이 제안문은 2024년 2월부터 3월까지 연속으로 진행된 <기후위기 시대, 축제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라운드테이블>의 발표 내용와 토론 내용을 우리의 관점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라운드테이블에는 축제 감독, 축제 기획자, 환경 전문가, 기후위기 활동가와 연구자가 참여했습니다. 제안문은 축제씬(scene)의 주요 행위자들과 함께 지금 축제가 처한 문제를 환기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공론을 모아가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기후위기는 우리가 인간 중심의 세계관 속에서 성장, 발전, 경쟁 등을 통해 만들어 온 인간 문명의 다중 위기입니다. 기후위기는 기술과잉, 인구증가, 소비문화, 불평등의 다양하고 축적된 위기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탄소중립 뿐만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삶-체제에 대한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축제는 인간의 즐거움을 위한 화려하고 폭발적인 대규모 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한국의 축제들은 행정 주도의 일방적인 공급과 동원 체계 속에서 일시적인 대량소비를 강요하며 자원 낭비와 환경 파괴의 주범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후위기 시대의 축제는 생태 파괴, 동물 착취, 쓰레기 배출, 에너지 과소비 등의 문제를 노출하며 심각한 위기에 처했습니다.
축제는 인류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축제는 인간이 오래 전부터 만들고 누려온 문화적 의례이자 정치적 공론장입니다. 축제는 일시적이며 폭발적인 즐거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축제는 인간을 둘러 싼 개별적이고 집단적인 소통과 협력의 가치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삶과 공동체 그리고 사회에 대한 성찰과 교감 역시 축제의 소중한 가치입니다. 축제는 강요가 아닌 자율, 훈육이 아닌 공감,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해 다양한 가치와 기쁨을 나누고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힘이 존재합니다. 축제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회 변화 속에서도 자발적이고 협력적인 시민과 공동체의 역량을 통해 지속되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인간 문명에 대한 깊은 성찰과 변화가 필요한 기후위기의 시대, 바로 축제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 다시 상상하고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문명의 위기와 전환 앞에서 ‘인간-성장-경쟁’을 극복하고 ‘생태-순환-협력’의 삶을 상상하고 실천하기 위한 축제가 필요합니다. 이는 대안적인 세계관의 문제이며, 축제성에 대한 본질적이고 새로운 문제설정을 의미합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새롭고 대안적인 축제는 삶을 둘러싼 세계관(미학)을 바탕으로 할 때 등장할 수 있습니다. 비인간 존재(다양한 생명체)와 공존하는 생태계, 목적과 결과가 아닌 존재와 과정으로서 서로 연결되고 순환하는 일상, 다양한 주체와 객체 사이의 협력을 위한 공통감각 등이 축적될 수 있는 축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기후위기 시대에서도 축제는 계속돼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기후위기 시대의 어려움과 우울감도 함께 공감하고, 격려와 협력의 감각을 넓혀가는 삶의 과정이자 시공간으로서 축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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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이 아닌 다양한 생명체의 존재를 포용하며 지속가능한 공존의 과정으로서 축제에 접근합니다. 축제의 혁신성과 생태적 전환의 가능성은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축제 기획자 개인이나 주관 단체만이 아니라 기후위기라는 문명의 위기를 고민하는 사회적 책임이 동반돼야 합니다. 축제를 접근하는 관점 자체가 개별 축제의 성과가 아니라 사회적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의 가치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축제 의사결정권자들의 변화와 혁신을 요구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축제 현장(scene) 자체가 다양한 축제 구성원들이 공존하는 하나의 생태계입니다.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축제를 둘러 싼 사회 환경과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축제들 사이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좋은 관객은 결코 축제성(축제의 가치)와 충돌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새로운 축제의 가치는 규제가 아닌 제안(캠페인)으로, 훈육이 아닌 놀이로서, 인내가 아닌 즐거움으로 참여자들과 시민들에게 공감되어야 합니다.
축제와 관련된 다양한 생태적 전환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합니다. 창제작, 교통, 에너지, 먹거리, 쓰레기 등 축제 전반에 걸쳐 생태친화적인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자기 노력과 투자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축제 현장은 열악한 노동환경, 일방적인 관료주의와 권위적인 집행 체계, 축제 외부 환경의 정치적 불안정성, 민간 재원의 부족 등 다양한 문제들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 축제 구성원들의 열정만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부터 즐거워야 합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축제, 축제 활동 자체의 지속가능성에서부터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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